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나라, 중국. 중국의 부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7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의 쇠퇴는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의 2008년 11월 보고서는 미국의 쇠퇴와 다극체제의 도래를 전망,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유지할 것이라던 2004년 보고서의 결론을 수정했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마틴 자크가 2009년에 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팍스 시니카'(Pax Sinicaㆍ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시대를 선언하고, 중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사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 범위와 영향력은 유럽과 미국이 차례로 지배해온 지난 2세기 동안의 변화를 훨씬 능가하는, ‘지구의 자전축이 바뀌는 것과 같은’ 거대한 지각 변동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에 따라 서구중심주의는 종말을 고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미국은 패권을 뺏기는 데 따른 충격과 상실감에 어느 나라보다 큰 정신적 외상을 입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의 부상을 지켜보는 그간 서구의 반응은 경제적 측면에 집중하거나, 중국의 서구화를 점쳐왔다. 중국의 힘은 경제 영역에 국한될 것이며, 서구식 모델을 따르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이 책은 그런 주장이 오류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중국의 헤게모니는 세계인의 가치관과 문화까지 포함하는 전방위로 확대될 것이며,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중국만의 독특한 정치 형태가 서구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제 자석은 중국에 있다. 과거에는 자석이 중국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길이 중국으로 통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저자는 팍스 시니카를 ‘필연’으로 규정하고,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측하는 데 책의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뉴욕에서 베이징으로 세계의 수도가 바뀌고, 위안화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될 것이며, 중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기구가 등장해 서구가 주도해온 기존 기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미 아프리카 경제는 중국 권역에 상당한 정도로 편입됐고, 아시아 지역에 있으면서도 서구에 더 가깝던 호주와 뉴질랜드도 중국 쪽으로 끌려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예측에 힘을 실어준다.

그 중에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왕조시대 중국이 동아시아를 상징적으로 지배했던 조공 제도가 새로운 형태로 부활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조공 제도는 중국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게 기본이다. 저자는 팍스 시니카 시대의 조공이 과거처럼 공물을 바치고 예를 표하는 방식은 아니겠지만,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그 질서 아래 공존하는 ‘유연한’ 헤게모니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저자가 이런 진단을 내리는 근거는 ‘중화주의’라는 중국 고유의 가치관에 있다. 개별 국가를 동등한 독립체로 보는 서구식 국민국가 개념과 달리, 중국은 수천년 전부터 자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중화주의 DNA를 갖고 있으며 이 기준에 따라 세계 각국의 서열을 매기고 질서를 재편할 것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문화적 우월주의가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중국의 도약을 실감하고 있는 독자라도, 이 책의 내용에는 충격을 받을 것 같다. 중국의 헤게모니가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크게 뻗어나갈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역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존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게 될 팍스 시니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그의 선언은 국제 역학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각국 정부의 외교 정책뿐 아니라 개인의 사고 방식에도 근본적 혁신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새로운 세상이 코 앞에 닥쳤다는 긴장감에 스릴마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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