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권한다!

“오늘날 격변하고 있는 세계의 핵심을 단 600쪽의 글을 통해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시라!”

이렇게 나는 권하고 싶다. 중국 부상론 또는 패권론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은 중국의내면을 정교하게 읽어내고 그걸 통해 세계 질서 재편의 경향과 본질을 짚어내는 위력을절감하게 해 줄 것이다. 그건 자료의 풍부함과 치밀한 논리 전개만이 아니라 중국의 변화를 읽어내는 틀 자체가 다르고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마틴 자크는 영국의 좌파 잡지 <마르크시즘 투데이>의 편집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런던정경대학 부설 국제관계및외교전략연구소(LSE IDEAS)의 아시아 경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으로 영국 언론 <가디안>에 아시아 문제 전문가로서 기고를 해왔다.

그런 까닭에 꽤나 까다로운 이론적 성찰 위주의 <마르크시즘 투데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증적 자료 제시와 세계 체제 전체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런 이론적 토대가 굳건하게 있기에 변화의 속도가 빠른 세계 현실의 핵심을 명확하게 잡아내고 있기도 할 것이다.

경쟁하는 다양한 근대와 문명사

이 책의 덕목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변화를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해서 확대 재생산해내는 중국의 경제력에만 시선을 한정시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마틴 자크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문명사적 자산의 기반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중국이 중국형 발전의 길을 창출해내고 있는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서구의 발전 과정이 만들어낸 역사관이나 발전론 또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틀 속에서 중국을 설명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서구의 경험만이 유일한 근대적 선택이 아니라는 현실, 달리 말해서 “경쟁하는 다양한 근대적 선택들”에 대한 자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통치술의 지혜“를 가지고 정치적 안정을 지속시키는 면모도 서구 정치철학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중국의 현실적 요구를 전제로 파악해 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중국을 사회주의 혁명과 이후 실용 노선의 채택에 따른 자본주의화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존재하는 유교 문명의 저력을 깊이 응시한다. 이때의 유교 문명의 힘이란 낡은 고대의 정치철학이나 중세 봉건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정치가 중국 인민에게 도덕적 덕을 갖춘 부모와 같고 따라 그 책임 또한 무한하다”는 면모를 이해하는 틀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계약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근대적 현실로 보이지만, 도리어 훨씬 그 책임의 수준이 높고 정치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주시한다. 물론 그는 이러한 정치철학 내면에는 그 책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에는 역성혁명이라는 하늘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전제가 있음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마틴 자크는 비교정치학자로서 명성을 누렸던 중국계 미국 정치학자 루시안 파이(Lucian Pye/중국 이름 바이루신·白盧恂)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중국인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중국의 문화, 민족, 문명이지 국민국가라는 제도가 아니다.”

중국이 만들어낸 중국의 길

루시안 파이의 이 말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체제가 유럽의 국민국가를 국제적 현실로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국가의 팽창을 지향했다면, 중국은 오랜 역사 속에구축된 중국 문명이라는 체계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마틴 자크는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두 단위의 결합 속에서 다른 나라를 이해하고 국제 질서를 분석하는 서구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만의 자산과 전통 그리고 사유방식을 알지 못할 경우, 잘못된 분석과 진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그간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중국이라는 나라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고 날이 갈수록 자본주의 양식에 흡수되어가며 결국 서구를 닮아가게 되든지 아니면 그러한 기획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19세기 청조 멸망의 과정에서 겪었던 이른바 “굴욕의 세기”를 통해 배운 역사적 교훈과 자신의 문명사적 자산을 중심에 놓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하나로 일치시켜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 해서 중국의 성장은 지금까지의 서구적 발전의 경로나모델과는 다른 차원의 대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마틴 자크는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국의 성장은 과거 식민지를 기반으로 산업화의 동력과 자원의 확보를 이루어냈던 서구 제국의 발전사와는 명백하게 구별된다는 것이다. 도리어 중국은 식민지적 현실을 딛고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하면서 자신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중국에 대한 존경을 하나의 문명적 틀로 세워 그 안에서 중국의 성공 모델을 구축해내고 있음을 짚어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이 전환기에 처한 세계적 갈등과 모순, 그리고 자원 전쟁을 격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헤게모니가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 중국의 헤게모니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대안 체제를 모색하려는 인류에게 중국의 경우는 이제까지의 서구 위주의 모델 선택과는 차별성을 보이는 측면이 의미 있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자화상을 새로 구축해야

마틴 자크의 이러한 논점과 관찰은 세계 체제를 분석하는 최근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뚜렷한 경향을 대변해주고 있다.

안드레 군다르 프랭크가 <리오리엔트>(1998년)를 통해 아시아 문명의 기반을 주목하고 세계 체제의 변화를 새롭게 읽어낼 것을 주문한 것이나 조바니 아리기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007년)를 통해 중국의 변화를 주목한 것과도 일치한다. 세계 체제 전체의 변화 과정을 통해 중국의 오늘을 읽어낸 점은 조바니 아리기와 동일하며, 아시아의 문명사적 바탕을 주시한 점에서도 안드레 군다르 프랭크와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마틴 자크의 특별한 장점이라면 이러한 이론적 지점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지구적 사실들을 치밀하게 엮어 하나하나 분석해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은 단지 세계 체제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국제 정세를 새롭게 읽어내면서 우리의 대응 전략을 고민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로서는 중국의 변화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과 어떻게 얽혀 한반도의 운명을 규정하게 될 것인지 역사적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세계체제론의 역사 속에서 임마뉴엘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세계 발전사 500년 이론에 대한 반격은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특히 과거 종속론의 대부격으로 활동했던 안드레 군다르 프랭크가 “문명사의 5000년”이라는 틀을 제기하면서 오늘날의 현실도 지구적 관점에서 문명의 거대한 저력까지 포함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와 베리 질이 함께 편집한 <세계체제론(The World System: Five Hundred years Or Five Thousand?)>(1993년)은 아직 국내에서 번역이 이루지진 않았으나 그런 각도에서 우리에게 상당히 풍부한 역사적 성찰을 주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삼성이 2009년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한길사 펴냄)이라는 역저를 통해 중국에 대한 역사의 장기적 관점을 제시한 것이나, 김한규의 <천하국가>가 전통 시대의 동아시아 세계 질서를 책봉 체제 또는 조공 체제의 시선으로 접근해간 것도 모두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웬 라티모어가 1972년에 출간한 명저 <투르키스탄으로 가는 사막의 여정(The Desert Road to Turkestan)>을 이런 문명사적 틀 속에 새로 읽고 동아시아의 현실을 재해석해나간다면 대단히 귀중한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1987년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를 통해 1500년에서 2000년의 세계사를 하나로 엮으면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일본의 헤게모니가 부상할 것으로 보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구적 관점에서 경제와 군사의 측면만 보았던 결론인 것은 오늘날 분명해졌다. 문명의 거시적 역사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자산으로 삼지 않는 관점이 가지는 시선의 깊이는 아무래도 현실의 심층을 아는데 부족할 것만 같다.

마틴 자크의 책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학자 리민치의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종말>(류현 옮김, 돌베개 펴냄)과 함께 읽어본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엄청난 자원을 빨아들이는 세계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성공이 과연 세계 경제 체제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리민치의 시선과, 중국 자체의 고유한 문명사적 저력의 자산을 주목하는 마틴 자크의 비교는 우리에게도 던지는시사점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산 대지진과 우리의 자화상

서평을 마치면서 한 가지 추가로 권할 것이 있다. 지난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본 펑 샤오캉 감독의 작품 <대지진(Aftershock)>이 개봉되면 한번 볼 것을 추천한다.

1976년 단 23초 만에 27만 명이 희생된 당산 대지진의 비극을 뚫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겪은 중국인들의 상처와 충격적인 정신적 외상, 그리고 이후 변모하는 당산과 중국의 모습은 오늘날 중국 자신의 자존심이자 자화상이며 저력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것이 문화 대혁명이라는 정치·사회적 대재앙을 뚫고 살아남은 자들의자기고백이라면 우리는 중국의 내면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이야기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는 곧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다시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 나라가 될까? 또는 되어야 할까?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자문이다. 한반도의 전체적 현실에 대한 전망과 대응도 이 물음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