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존재만큼 한민족의 유전자에 오랫동안, 그리고 또렷하게 새겨진 화두(話頭)는 없다. 어떻게 하면 거대한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느냐는 문제는 당(唐)의 100만 대군과 맞닥뜨린 고구려의 연개소문에서부터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서울을 빼앗긴 이승만에 이르기까지 우리 옛 지도자들이 당면했던 난제(難題)였다. 그리고 이 화두는 TV와 자동차를 한대라도 더 팔기 위해 “니 하오”를 외치는 오늘날의 한국 기업인이나 북핵·천안함·한미 연합훈련 등에서 중국의 태도를 살피는 정부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중국인들에게 19세기는 치욕의 시대였고, 20세기는 회복의 시대였으며, 21세기는 우리의 우수성을 떨치는 시대가 될 겁니다.” 그의 말처럼 지난 세기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의 전략으로 국력을 키운 중국은 이제 세계를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다시 우뚝 선 이 ‘거인’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은 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영국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마틴 자크는 “예스”, 오스트리아 출신의 종군기자 에릭 두르슈미트는 “노”란 대답을 각각 내놓는다.

베이징 인민(人民)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낸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원제: When China Rules the World)이라는 책에서 유럽의 중국관을 비판한다. ‘중국의 부상은 경제적 측면에 국한될 것이고, 중국은 적당한 때 서구식 국가가 될 것이며, 국제사회는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란 가정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놀라운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서구식 국가가 되기는커녕 독자적 문명권으로 중화사상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 재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크는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미국과 함께) 양대 강국으로 부상하거나 궁극적으로 유일한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중국 공산당의 미래에 대해 서방 학자들이 대체로 어둡게 보는 것과 달리 자크는 “중국을 성공적으로 변모시켜 높은 지지를 받는 공산당은 앞으로 20년 이상 계속 집권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뿐 아니라 중국식 정치는 서구 정치모델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며, 중국의 유교적 도덕관이 가치관 경쟁의 중심에 서고, 소프트파워로서의 중국 문화, 중국 음식, 중의학 등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 헤게모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천하’가 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국은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다룰까. “중국은 적절한 때가 오면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할 것이지만, 향후 50년 동안은 특별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중국이 다른 곳보다 더 고도의 문명을 갖고 있다는 수천 년의 ‘우월의식’은 분명히 표출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중국인의 우월의식이 위계질서와 결합되어 나타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월의식이 동아시아에서 ‘조공제도’와 같은 불평등 관계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예측이 맞는다면, 한국도 앞으로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외교안보 등에서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용의 유전자'(원제: BEWARE THE DRAGON China:1,000 Years of Bloodshed)에서 두르슈미트는 다른 시각으로 중국을 본다. 그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인류의 절반 정도를 희생할 수도 있을 것”이란 마오쩌둥의 말을 인용하면서, 중국을 ‘주변의 다른 문명 세력들과 주기적으로 충돌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자를 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나라’로 규정한다. 중국이 국경선을 넘어 전쟁에 나설 때면 공격성과 전투력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칭기즈칸의 잔혹한 유라시아 정벌, 명나라 때 정화(鄭和)의 아프리카 대원정, 20세기 중반의 6·25전쟁 개입, 우수리강에서 벌어진 소련과의 충돌을 검토한 뒤, 이렇게 경고한다.

“베이징의 야심적인 군(軍) 현대화 계획과 점차 강해지고 있는 민족주의는 주변국들에 불안감을 안겨주면서 주변지역의 안정을 해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태평양에서 미국을 몰아낸 뒤, 새로운 맹주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두르슈미트는 중국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가지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는 미국·러시아·일본이 중국의 전횡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내부로부터의 개혁요구이다. 그는 “중국의 경제가 다원화되는 오늘날 전체주의적 일당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 몰두하고 있지만, 그들이 민주적인 정치체제 속에서 인권과 자유와 법치를 요구할 때가 곧 닥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또 “중국의 부가 증가하면서 부패가 최고조에 달하고 범죄가 증가하며 사회안전망이 와해되자 인민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이어졌다”면서 “중국은 내부적으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두 책은 2008~2009년에 쓰여 최근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개인의 시각을 강조한 부분도 눈에 띈다. 자크의 책에서 ‘저임금 시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거나 ‘중국은 대양해군을 양성할 계획이 없다’는 부분은 오늘날 중국의 실체와 다른 내용이다. 두르슈미트는 젊은 세대의 민주화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두 저자의 논리는 중국이란 거인과 영원히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에게 유용한 분석의 틀을 제공한다.